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도축장 수십여 명 모여 ‘추도’
▲ 돼지에게 깨끗한 물을 주고 보듬어주는 활동가들.
감자에서 더욱 김이 홱 끼쳤다. 참가자 저마다 손수 자른 수박이며 찐 감자, 깨끗한 물을 담아 왔다. 도살장 바로 앞에서 몇 분 후면 죽음을 맞이할 돼지와 소에게 주기 위해 준비해온 것이다. 서울은 물론 남양주에서 새벽부터 달려온 차다.
도살장 건너편 차 안에는 수십여 마리의 돼지를 실은 트럭이 순차로 도착했고 스무 명 가까운 참가자들은 그들에게 물을 주었다. 통상 개와 돼지 등 죽음을 앞둔 개체에는 ‘내장 손질이 어렵다’는 이유로 물을 주지 않는다고.
▲ 실려온 돼지가 힘겨운 듯 보고 있다.
도축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린 소리는 돼지의 ‘단말마’였다. 그래 그것은 필시 단말마다. 본디 단말마(斷末魔)란 임종 시의 숨이 끊어질 때 나는 소리를 일컫는 말이지만, 차선도 분명하지 않은 도로 하나를 건너 두고 제 죽을 것을 아는 그들은 죽는 것보다 처참한 비명을 질러댔다.
참가자들은 조용히, 평화롭게 비질(Vigil)을 시행했다. 비질은 캐나다 동물권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Tronto Pig Save)’에서 시작돼 한국에서 본격 시행한 것은 1년 채 남짓이다. 활동가들은 각지의 도축 도계장은 물론 수산시장을 찾아가 ‘비질’을 행한다. 비질이란 일상 속에 감춰진 폭력을 드러내 진실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활동가는 설명했다.
▲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돼지들 모습. 돼지의 평균 수명은 15년가량이지만 이들은 보통 6개월령에 도살된다.
오전부터 모인 참가자들은 돼지를 태운 차량이 도착할 때마다 조용히 일어나 그렇지만 신속하게 물을 주었고 그들을 보드랍게 만져 주었으며 차량이 도축장으로 들어가면 끝까지 그들을 바라봐 주었다. 조용하고 엄숙한 그것은 차라리 같은 인간에 의해 죽어가는 생명에게의 ‘추도(追悼)’에 가까웠다.
주최 측에 의하면 초반에는 도축장 관계자들이 다소 냉소적이었지만 1년 가까이 조용히, 평화적으로 시행되는 비질에 차츰 이해를 더했다고. 이날은 코로나19로 그들도 약간은 예민한 상태처럼 보였다.
▲ 참가자들이 엄숙히 도축장을 바라보고 있다.
태어나 처음 햇살을 보는 날이 죽는 날
이날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은 평균 6개월령이다. 돼지의 평균 수명 15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임이 틀림없다. 돼지들은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자신들의 분비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겨울에 이어 이날 비질에 참여한 한 참가자는 소 도축장 앞에서 “겨울에 왔을 때 도축하는 곳 저 앞에 소 한두 마리가 서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놓은 듯한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 활동가들의 상의에 새겨진 동물권리장전. 설명하던 활동가는 말했다. "저들도 살아있는 동물이잖아요, 우리처럼."
한 활동가는 “지금 죽으러 들어가는 돼지들은 생후 6개월령으로 평균 수명 15년에 비했을 때 아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한 단체에 의해 구출돼 며칠 후 한 살 생일파티를 앞둔 ‘새벽이(돼지)’에 비하면 얼굴 크기가 확연히 작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이들이 먹고 있는 이 동물은 ‘음식’이 아닌 엄연한 생명체이며 이것은 명백한 홀로코스트로 사람들의 암묵적인 무관심 속에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채식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채식하기 전과 후에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한 참가자는 “몇 해 전 이곳에 와서 고기를 먹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바로 옆에 도축장에서 잡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참가하게 되니 그동안의 의식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는지 각성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동물권 단체 활동을 지원해주는 입법과 정치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이날 비질은 경기도 화성시 한 도축장 인근에서 집합해 도살장으로 들어오는 트럭에 실린 돼지들에게 깨끗한 물을 주고 바로 옆 소 도축장, 그 옆의 유통시장까지 일정이었다. 유통장에서는 가죽이 벗겨진 돼지 머리뼈를 자르는 모습이나 머리에 하나에서 두 개 정도의 총격 자국이 있는 소머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내부 촬영은 금지됐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의 ‘마음 나누기’가 이어지는데 일상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눈으로 본 느낌을 교환하는 자리라고 기획자는 설명했다.
▲ 소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왼편으로 소의 내장 등이 담긴 자루가 보인다.
당신도 ‘고기’를 먹는가?
한 참가자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은 먹히기 위해 태어난다. 소가 밭을 가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저들은 태어난다”고 했다.
▲ 비질Vigil 후 마음 나누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곳 도축장에서만 하루에 2-3천 두의 소 돼지가 도살된다고 하니 하루 24시간 1천440분 동안 60초에 2마리 정도가 도살되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이 사진 설명을 읽는 짧은 동안에도 말이다. 사진 참가자 H씨 제공
또 한 활동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비질을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곳이 수산시장이라고 했다. 고객의 눈앞에서 ‘물살이(일명 물고기)’를 잡아 주는데 인식 차이로 그것이 ‘먹을거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 도축장 내부의 문. 가끔 열린 문으로 도축된 돼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고.
이날 참가자 가운데는 수년간 영국에서 생활한 유학생도 있었다. 그는 영국에는 비건(Vegan)레스토랑이 즐비하며 주문 시 고기가 들어가는지, 음식에 포함된 식품이 무엇인지 세세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제 채식한 지 2년 차에 들어선 한 참가자는 “비건까지는 하지 못한다. 계란 생선 정도는 섭취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 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 참가자들이 준비해온 감자 물 수박. 물은 뚜껑에 구멍을 내 준다고 한다.
단체 집단 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한 한국사회에서 자신들과 같은 것을 먹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어쩌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당신도 ‘고기’를 먹는가. 그렇지만 이러한 동물의 죽음들에 마음이 아픈가. 그렇다면 주위의 채식주의자에게 냉기 어린 시선만이라도 거두시라.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당신은 ‘비질(Vigil)’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 돼지 도축장 내부.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는 돼지들의 비명이 들린다.
/ 이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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