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중략)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삼십칠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는 고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간이다.
신영복 선생은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 이후 육군 장교로 임관 육사 교관을 거친 후에 숙명여대 교수를 지내던 중 1968년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 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됐다가 전향서를 쓰고 1988년 특별 가석방으로 20년 20일만에 출소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2006년까지 재직,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암 판정을 받아 투병 요양 중 2016년 별세했다.
위의 글에서는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여름보다는 차라리 겨울을 택한다”는 감옥 생활의 고통과 그러한 와중에서도 ‘사람을 증오하게 되지 않는 춥고 혹독한 겨울’을 선택하는, 즉 자신의 육체의 고통과 사람에의 사랑을 맞바꾼 선생의 인간미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에서도 강점 당시 형무소의 생활을 얼핏 전하는데, 여러 명이 수용된 방이 너무 좁아서 서로 발과 머리가 겹치게 세로로 누운 다음 옆에서 발로 밀어 그 간격을 좁게 만든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는 와중에 약한 자는 갈비뼈가 부러져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고.
이 책은 1998년 8월 초판 1쇄를 인쇄하고 2016년 2월 72쇄가 발행될 정도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선생의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내면을 진실하고 아름다운 필치와 사색으로 적어냈다는 것이 독자의 마음을 끌었을 거라 사료된다.
초판 서문에서 평화신문은 처음 신 선생의 글을 ‘평화신문’에 싣기에 다소 망설였다고 고백한다. “안 그래도 ‘평화신문’이 소외되거나 인권이 유린된 사람들의 이야기만 실어 어둡고 그늘지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터에 감옥에서 보낸 편지, 그것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무기수’의 글을 싣는다고 짜증 섞인 항변은 없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조용한 호소력이 신 선생의 글에는 있었던 것이다. 신문에 실린 편지를 읽고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온몸으로 쓰는 글이기에 심금에 와닿는다고 하는 사람도, 신 선생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람, 주소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뒤이어 밝힌다.
영인본 엽서 서문에서, 여러 친구를 대신한 서문에서는 “어쩌면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을 읽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심정은 비단 그를 아는 친구들뿐 아니라 그와 무연한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람이 그리운 시절에 그 앞에 잠시 멈출 수 있는 인간의 초상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이라고 이영윤은 밝힌다.
앞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한산성의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에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휴지에다 깨알같이 박아 쓴(더러는 연필로 쓴 것도 있고 볼펜으로 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철필로 먹물을 찍어서 쓴 것들. 이 원본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철필로 먹물을 찍어서 또박또박 박아 쓴 글씨들은 글의 내용에 앞서 어쩌면 글의 내용보다 더 짙은 느낌을 갖게 한다. - 전우익) 그의 사색 노트를 함께 실었다. 이 노트는 저자가 출소한 뒤에야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당시 남한산성에서 근무한 어느 헌병의 친절이 아니었더라면 영영 없어져버렸을 그의 20대의 사색의 편린”이라고 적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감옥이 사람의 영혼까지는 가두지 못한다. 수많은 양심수들이 감옥 안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80년대에 수많은 양심수들이 감옥에서 밖으로 글을 써 보냈다. 그리고 감옥에서 글들을 썼다. 양심을 버리지 않고 간직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글은 한치의 거짓과 허튼 수작이 없다”라고 추천사를 보냈다.
소설가 이호철은 “오늘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수상 혹은 수필문학에서 내가 읽어본 한에서는 이 저서만큼 탁월한 저서를 읽어본 일이 없다. 마치 공자의 『논어』를 읽는 맛이고, ‘파스칼’이나 ‘몽테뉴’의 수상을 읽는 듯이 한 구절 한 구절이 깊이 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동시에 고도의 비극미를 수반한 채 스며드는 그런 글이다. (중략) 고도의 절제, 속삭이는 듯하면서 절절하고 그리고 강건한 정신, 첫 한 구절을 읽는 순간 우리는 실제로 태백산 근처 하늘 높이 지나가는 고압선에 닿은 것 마냥 꼼짝 못하고, 인간살이의 근원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 책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1969년 1월∼1970년 9월) △독방의 영토(안양교도소 1970년 9월∼1971년 2월)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대전교도소 1971년 2월∼1986년 2월) △나는 걷고 싶다(전주교도소 1986년 2월∼1988년 8월) 등으로 구성된다.
신영복 선생이 낯선 독자라면, 소주 ‘처음처럼’의 필체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먼저다’ 등의 글씨체 등을 떠올린다면, 그 필체의 주인이 바로 신영복 선생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모필 서한에서 느껴지는 서민적 체취와 정서를 독특한 서풍에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 서예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반 아파르트 헤이트 투사로, 민족 화해의 상징으로 남아프리카에 넬슨 만델라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고 신영복 선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성공지향적인 삶에만 몰두할 때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지킨 ‘양심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도 있었다는 것은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이 무미건조하다거나, 벽과 마주하고 있는, 혹은 평범하게만 느껴진다면 한 번쯤 추천한다.
“세상의 벼랑 끝에 서서 이처럼 허황된 낙관을 갖는다는 것이 무슨 사고의 장난 같은 것이지만 생명을 지키는 것은 그만큼 강렬한 힘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이다. 개인의 생명이든 집단의 생명이든 스스로를 지키고 지탱하는 힘은 자신의 내부에, 여러 가지의 형태로, 곳곳에 있으며, 때때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 나는 내가 지금부터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당해낼 힘이 나의 내부에,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풍부하게, 충분하게 묻혀 있다고 믿는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 이영주 기자
http://whynews.co.kr/news/article.html?no=8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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