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하나의 사안을 다루고 이처럼 수많은 전화를 지속적으로 받아본 적은 없는 듯하다.
시간은 2020년 12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오후 평소 안면이 있던 기자분께 전화가 왔고 용건은 몇 년 전 이슈가 됐었던 시의원 ‘폭행 사건’ 관련 기사 삭제였다. 갑작스러운 전화도 전화지만 매일 참신한 사안들을 고안하고 있는 와중에 그 사안을 기억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곧 그 기자분은 장본인 시의원이 지목한 사건 관련 기사 링크를 몇 개 보내줬다. 그리고는 내려줄 수 있으면 내려달라고도 했다.
위의 ‘폭행 사건’이란 화성시의회 한 의원이 여성 지인 폭행 혐의로 2018.9. 경찰에 고소된 사안으로 이 의원은 해당 사건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당했다. 이후 피해자 합의를 통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됐으며 민주당 경기도당은 해당 시의원을 제명하고 화성시의회 윤리위에도 제소를 권고했었다.
인터넷신문의 폭발적 증가로 잊힐 권리가 표면상으로 떠올랐다. 이 권리의 행사는 기사삭제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언론사 규모를 떠나 빈번히 회자된다. 해당 시의원도 지역언론은 물론 중앙언론의 본인 기사를 100여 개 내렸다고 했다. 사실 이 사안은 전화를 받기 전에도 지역 사회 기자들 사이에서 언급되던 내용이기도 했다. “누구누구의 부탁을 받고 내려줬다”는 말이 나돌던 참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본지는 장고(長考) 끝에 본 사안을 기사로 다루기로 결정했고 관련 기관 등을 취재해 기사 작성 후 출고했다. 해당 시의원은 기사가 나간 후 “기사를 쓰셨네요”하며 전화를 해왔고 당시에는 서로 웃으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소식을 들은 것은 개인사로 제주에 내려가 있던 이틀 차에서였다.
이도 역시 평소 알고 지내던 신문사주분의 전화를 통해 알게 됐고 통화를 마치자마자 다음 날 아침 김포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원래의 계획은 3월 말 상경이었던 차였다.
잊힐 권리 논의는 2014년 5월 13일 유럽사법재판소(CJEU)의 잊힐 권리 판결 이후 한층 활발해졌다. 국내에서는 일찍이 언론사 자체 기준에 따라 잊힐 권리 요청을 수용하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인터넷 매체가 조정·중재 대상으로 포함된 2005년부터 기사삭제를 처리 방법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1999년 형법상 명예훼손에 관한 사안에서 공적인물 명예훼손의 위법성을 판단할 때 사인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른 공인은 관련법에 규정된 공직자뿐만 아니라 정치인, 대학총장, 방송인, 언론인, 연예인, 종교지도자, 스포츠 스타 등 공적인 일에 종사하거나 대중적인 흥미나 명성을 가진 사람까지 다양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4년 뉴욕타임즈 대 설리번 사건**에서 “공직자가 자기 직무행위와 관련된 명예훼손적 허위보도에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그 보도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헌법의 요구”라고 판시했다. 이로써 공인은 보도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공인이론’이 한층 견고해졌다는 해석이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매체의 사실적 주장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의 반론보도, 정정보도, 추후보도 및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사건을 접수해 조정·중재하고 언론보도 침해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1981년 3월 31일 설치한 법정 기관이다.
해당 시의원은 본지의 2020.12.29. 기사 <민주당 복당하려 언론사에 기사 삭제 요청 시의원 ‘물의’>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 경기중재부에 제소했고 앞선 1월 27일 심리에서 내려진 중재부 직권결정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중재부 결정에 이의신청을 한 경우 법원 소송이 제기된다.
이번 사안을 두고 누군가는 ‘예쁜 기사’만 썼음 좋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냥 모른 척하지 그랬냐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반드시 싸워서 “이기라”고도 했다. 또 누군가는 “이번 사안으로 경기도에서 기레기와 기자(記者)가 나뉠 것”이라고도 했다.
하나의 사안을 다뤄 이렇게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동일한 내용으로 전화를 받아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기사를 썼을 때도, 언중위 심리일 전날에도, 심리를 받고 온 날에도, 이후에도 “이제라도 기사를 내리라”, “좋게좋게 해결하자”는 내용이 담긴 전화를 수차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 중에는 기자도 있었고 해당 시의원 지역위원회 사무국장도 있었다.
앞으로 기나긴 법정 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제소는 이미 시작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날 그 기자분의 ‘기사 삭제 요청’ 전화를 받은 때부터 말이다. 해당 시의원은 “오보를 이유로” 당해 사건 기사를 언중위에 여러 건 제소해온 상태였고 “제소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사 삭제”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하물며 본지는 당시 사건 기사들을 내릴 의사가 전혀 없었으니 오죽했을까.
해당 시의원이 당시 사건 기사 삭제를 요청하는 이유는 “민주당 복당”이다. “시의원 재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당장 내년 6월 1일 실시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갈 길이 멀다. 우선 복당도 돼야 할 것이고 공천에 이어 결정적으로 시민의 선택을 받는 당선도 돼야 한다.
혹자는 권력에 맛을 들이면 KTX(대한민국에서 운행 중인 초고속열차)에 붙어가는 파리처럼 절대 떨어지기 싫어한다고도 한다. 인간 본성에 비춰 봤을 때 뭐 그리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자신의 정치철학과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 스스로 당을 나감(脫黨)을 결행하는 시·도 의원도 있었다. 그들의 ‘큼(大)’이 사뭇 그리워지는 1월이었다.
* 「잊힐 권리와 기사삭제청구권에 관한 연구 –언론피해구제 관점에서」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논문(박홍기 2017.10.).
** 설리번 사건 : 흑인들이 1960년 3월 29일자 뉴욕타임즈에 시민운동을 벌이던 마틴 루서 킹을 돕기 위해 ‘그들의 솟구치는 함성을 들어라(Heed Their Rasing Voices)’라는 제목으로 모금 광고를 낸 것이 발단이 됐다. 광고에는 앨러배마 주정부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몽고메리시 경찰국장 L. B. 설리번은 광고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명예가 훼손됐다며 신문사와 광고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앨러배마주 법원은 뉴욕타임즈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 5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인정했으며 앨러배마주 대법원도 1심 판결을 받아들였으나 연방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해 뉴욕타임즈의 손을 들어줬다. 설리번에게 공인으로서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도록 판시한 것이다.
www.whynews.co.kr/news/article.html?no=1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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