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이영주
“지금은 언론 시민운동의 시대라고 하는 게 적합할 거예요. 이미 언론은 자본과 각종 권력에 잠식된 지 오래죠.”
한 신문사 편집장은 진지하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펴낸 창간 준비호 전면에 쇠스랑을 들고 있는 굵은 힘줄의 팔뚝을 지닌 동학농민운동 동상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어내기도 했다. 그것은, 그래 참으로 상징적인 거였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창간준비호와 창간호 어디에도 소위 말하는 권력자(정치인)의 축사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거였다. 주로 어디 어디 주민, 무슨 동 주민의 축사로 가득 메웠다. 인상적이기도 하지, 그의 고집을 알 만도 했다.
우연찮게 나온 그의 말에서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거리가 일거에 해소되는 듯했다. 그렇지, 언론운동, 언론시민운동 그것이 정답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소득은 되지 않고 오히려 “돈 되는 델 가야지”하고 말하는 이들은 어찌어찌 어디서든 광고를 받기도 하니 말이다. 그것이 참으로 의아하기도, 스스로 답답하기도 했던 터였다.
그런데도 왜 언론 활동을 하고 있는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혹 취미인가, 이 치열한 현대 경쟁 사회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시대에 설마 취미일까. 아니면 신입도 아닌데 ‘정의 실현’ 운운하며 정말 한심하게도 멋있는 척하고 싶은 건가, 한동안 고심했던 터였었다.
여기저기 기레기가 넘쳐 난다. ‘기레기’라는 말을 무척 꺼린다. 어떤 이는 “이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하더라. 그런 존재도 있다는 것을. 그들이 그런 말을 듣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안다. 가짜 뉴스의 양산, 출입처의 수장과 구성원들을 자신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월권은 물론, 요즘 흔히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 혹은 “내가 누군지 알아”를 남발하는 이들, 많다, 생각보다 꽤.
대한민국 민법 2조는 신의성실을 다루고 있다(민법 제2조 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제2항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위의 이들은 신의를 좇지 않았고 권리를 남용했으며 의무의 이행에도 성실하지 않았음이라.
평소 여러 생각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다니는 터라, 한동안은 또 이런 생각도 했더랬다. “‘사회적 약자’란 어떤 의미일까. 약자면 약자지, 왜 그 앞에 ‘사회적’을 붙였을까” 그러다 철 지난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됐다.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미인과 아이와 노인은 보호해야 한다.” 여기서 미인이란 아름다운 사람(美人)이 아닌 어여쁜 이 혹은 여인(美女)을 이를 터이다.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이 젊은 남성 군인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그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로서 이 세 층위의 사람을 열거한 것일 게다.
여기서 또 하나의 키가 풀린다. 그래, 사회적 약자, 이는 상황적 약자를 이른다. 하나의 대상 혹은 존재가 언제나 약자로 머물지는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물처럼 작용하므로. 사람은 건장한 청년이건 정치 경제 명성 등에서의 권력을 가진 자이건 아니면 평생 그러한 근처에도 못 가본 자이건 어떠할 때 한 번은 상황적 약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때 미력하나마 그가 다시 일어서게끔 돕는 발판이 되고자 했던, 상황적 약자를 조명하고 싶은 처음의 마음이 떠올랐다!
이것 또한 복인지, 기자 초임 시절 만났던 선배들은 “늘 나보다 약자를 돌아봐라”, “약자를 비추는 글을 써라”, “기자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등의 조언을 해주시곤 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말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는데 또 사람이니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어” 이런 말들은 지금까지의 기자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숨 가쁘도록 치열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상식은 더 이상 보편적 잣대가 되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일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놀랍도록 자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대 문화 사회 법률 관습을 넘어 그 상황에 적절한 상식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는 언로가 확보돼야만 그 사회의 상식이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려면 언론인들은 늘 머릿속에 ‘돈 안 되는 여러 생각’을 집어넣고 다녀야 한다. 오늘도 머리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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